젊은 스토리텔링… 기대되는 세대교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 싶다.” 평창대관령음악제 3대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직후 만난 피아니스트 손열음(32)은 자신의 포부를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했다. 그녀가 잡고 싶어 한 두 마리 토끼의 이름은 ‘지역화’와 ‘세계화’이다. 신선한 대답은 아니었다. 이 토끼들은 평창대관령음악제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문화예술 페스티벌이 추구하는 ‘로망’이다. 보통은 어느 한쪽을 잡으려다 다른 한쪽은 놓치거나, 애매하게 노선을 추구해서 두 마리 다 놓치고 이도 저도 아닌 정체불명의 이벤트로 막을 내리기 일쑤다.

관건은 늘 그렇듯 누구에게나 가장 어려운 의문사인, ‘어떻게(how)?’이다. 강효, 정경화·정명화 선배 예술감독들이 이 토끼들을 몰랐다고 할 수 없다. 인맥을 총동원해 해외 유명 아티스트들을 섭외했고 지역민을 위한 음악회들을 개최했다. 하지만 음악제 내용은 수도권 연주회와 그리 차별성이 없었고, 지역 음악회는 의미만 살리는 면피 정도에 그쳤던 것이 사실이다. 그 어떤 ‘빅 네임’을 내걸어도 콘서트에는 늘 빈자리가 남았고 지역주민들은 소외됐다.

내로라하는 선배들에게도 버거웠던 숙제를 손열음은 온전히 풀 수 있을까? 어제 막을 내린 그녀의 첫 작품을 보자면 우선은 고무적이다. 선배들과 달리 그녀는 스토리텔링 능력의 보유자였고, 중심에는 ‘세대교체’가 핵심어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생물학적 나이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프로그램, 공연 형식, 공연 장소, 그리고 구성원 하나하나까지 손 감독은 자신의 메시지를 세련된 방식으로 꽂아 넣었다.

새 감독 체제 이후 준비 기간이 부족했음에도 올해 평창대관령음악제는 이전보다도 잘 정돈돼 있었다. 우선 7월 25일 개막 공연에서부터 지난 14년 동안 이 음악제에서 단 한 번도 연주되지 않은 레퍼토리들만을 소개하며 과거와 명확한 선을 그었다. 청중들의 리퀘스트로 진행된 피아니스트 박종해의 즉흥연주 ‘네 멋대로 해라’(7월 28일), 올해 100주년을 맞이한 작곡가 및 작품들로 꾸민 ‘100℃’(8월 1일), 필립 글래스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꾸민 ‘거울의 방’(7월 29일)에 이르기까지 각 프로그램들은 다양성이 돋보였다. 다소 낯설고 난해한 작품들은 감독이 직접 공들여 작성한 독창적인 노트 덕분에 청중들의 접근성을 높였다. 관광객만을 위한 리조트에 갇혀있던 공연을 강원도 명소로 대폭 확대한 것도 참신한 시도였다. 8회에서 12회로 늘어난 ‘찾아가는 음악회’는 정식 공연장의 벽을 넘어서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월정사, 원주시 뮤지엄 산 등 지역 명소를 포함시켰으며, 지역 예술단체들이 이에 화답하는 ‘프렌드십 콘서트’를 고성 통일전망대를 비롯한 야외 광장과 카페, 박물관에서 펼치며 평창대관령음악제와의 쌍방통행을 시도했다.

대망의 클라이맥스는 누가 뭐라 해도 매진 사례에 육박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공연(7월 28일·8월 4일)이었다. 세계 유수의 공연장과 명문 악단에서 활약 중인 한국 출신의 젊은 단원들을 대거 섭외해 조직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그녀가 잡고 싶어 한 지역화와 세계화라는 두 마리 토끼가 묘하게 어우러진 멋진 작품이었다. 이들은 프로젝트 악단이라는 정체성이 무색할 정도로 뛰어난 앙상블과 조직력을 선보이며 향후 음악제의 ‘간판스타’로서의 잠재력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사실 음악제가 시작하기 전, 기성세대는 신임 감독의 젊은 나이를 우려했다. 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젊음’을 무기로 내세우며 우려를 불식시켰다. 보수적이다 못해 고지식하기까지 한 클래식 음악계에서 ‘우리의 오늘은 당신들의 어제와 다르다’고 당당하게 선언하며 스스로 돌파구를 찾아내고야 마는 당돌한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 고용지표를 비롯해 삶의 모든 면면이 비관적인 한국 사회에 이들은 분명 큰 위안이자 가능성이다. 

 


[출처] 국민일보 '노승림의 인사이드 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