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진 평창…‘클래식 어벤저스’의 신선한 충격

지난 28일 저녁. 비를 살짝 맞은 대관령 뮤직텐트는 초연하고 말끔했다. 서울의 콘서트홀과는 사뭇 다른 운치 있는 풍경은 설렘을 자아냈다. 올해 처음으로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예술감독을 맡은 서른둘의 젊은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직접 쓰고 손본 150페이지짜리 프로그램 북으로 먼저 관객을 맞았다. 그녀의 필력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 연주자로서의 해석을 더해 진솔하게, 또 시적으로 써내려간 해설은 관객의 지적 호기심을 친절하게 채워줬다. 이 시대의 젊은 예술감독과 청중은 이렇게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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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프로그램은 손열음이 협연하고 드미트리 키타옌코(사진 앞줄 왼쪽)가 지휘하는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 막이 열리자 붉은 드레스를 입은 손열음(오른쪽)이 등장했다. 그녀의 피아노가 묵직한 괘종의 울림을 표현하고, 현·관악기 주자들이 낭만적 정서를 펼쳐 보이자 이 곡이 삽입된 어느 영화보다 훨씬 더 영화 같은 순간이 무대 위에 펼쳐졌다. 이미 여러 악단과 무대에서 이 곡을 연주했던 손열음은 부드러운 레가토로 작곡가 특유의 멜랑콜리를 한껏 드러냈다. 때때로 격앙된 듯 몰아치기도 했지만, 라흐마니노프가 써놓은 최루성 선율과 화성을 표현하기에 어쩌면 완벽한 접근이다. 3악장 빠른 패시지들에서는 숨을 깊이 들이마신 채 화음을 미묘하게 엇갈려 연주하며 극적인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손열음의 호연만큼 관악기 파트 연주자들은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었다. 특히 김홍박의 연주는, 호른이라는 악기에서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를 다 들려줬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날 연주된 두 작품 모두에서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카리스마 있는 모습과 전체 오케스트라를 감싸는 부드러운 음색을 오가며 곡의 정서를 극대화했다. 조성현(플루트)과 조인혁(클라리넷)을 비롯한 관악기 주자 대부분이 커튼콜에 단독으로 세워져 박수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2000년대 초반 KBS교향악단의 호시절을 이끌었던 러시아 노장 지휘자 드미트리 키타옌코가 이끄는 차이콥스키 4번은 몇 년 전 유리 테미르카노프가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과 내한해 들려준 차이콥스키 프로그램을 떠올리게 할 만큼 광활하고 신선한 기운이 넘실댔다.  

음악제가 열리는 기간만 모이는 프로젝트 오케스트라가 이렇게 수준 높은 연주를 들려줄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활동하는 한국인 명인들이 한데 모인 ‘음악계의 어벤저스’ 같은 오케스트라이기 때문이다. 솔리스트로 세계 무대의 초청을 받는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이 악장으로 참여하고, 독일 뒤셀도르프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 김두민(첼로) 등이 참여했다. 조인혁, 김홍박, 조성현, 김지영 역시 각각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케스트라, 노르웨이 오슬로 필하모닉, 독일 쾰른 귀르체니히 필하모닉, 독일 하겐 국립극장에서 수석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예술감독이 젊어진 만큼 그녀가 기획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평균 연령도 확 낮아졌다. 이날 한국 클래식 음악의 현주소를 목도한 1300명 청중은 충족감과 기대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커튼콜에서 받은 꽃다발의 꽃을 하나씩 꺼내 단원들에게 일일이 나누던 손열음의 표정에도 감격스러움이 묻어나왔다.

평창대관령음악제는 8월 5일까지 계속된다. 프로젝트 오케스트라는 지휘자 정치용과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한 번 더 무대에 오른다(4일). 노부스 콰르텟 연주회(4일)를 비롯해 다섯 번의 실내악 시리즈가 이어진다.  

 

 

[출처] 문화일보 김호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