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도 요란하게 즐겨보세요

손열음을 만나기 위해 제2회 ‘평창겨울음악제’가 한창인 강원도 평창의 알펜시아 인터콘티넨탈 호텔을 찾았다. 피아니스트 손열음 하면 필연적으로 떠오르는 단어가 ‘천재’다. 1997년 11세의 나이로 ‘영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 나가 2위를 차지한 이후 손열음의 이름 앞에는 ‘천재’ ‘신이 내린 재능’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손열음은 흔히 천재들이 첫 성공 후 부진한 상황을 겪는 ‘소포모어 증후군’ 한 번 없이 ‘루빈스타인 국제 피아노 콩쿠르’ 3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2위 등 국제 대회에서 계속 좋은 성적을 거뒀고, 최근에는 세계적인 클래식 매니지먼트사인 IMG아티스츠와 전속 계약을 맺었다. 어린 나이에 유명세를 얻었지만 그녀는 참 담담하고 담백하다.

화보 촬영을 위한 카메라 앞에서는 무대 위의 손열음이 그렇듯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보였고, 카메라 밖에서는 조용하고 다소곳한 천생 여자였다. 인터뷰 때도 솔직하고 가감 없는 답변을 하며 에디터를 당황시켰다. 담백한 여자 손열음. 그녀는 자신이 ‘천재’라 불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천재일 수도, 아닐 수도 있어요(웃음). 사실 제가 워낙 무덤덤한 성격이어서 웬만한 일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해요. 흔히들 음악가를 절대 음감이나 악보 외우는 능력 같은 것으로 천재냐 아니냐를 판단하시는데, 그 기준이라면 저는 천재가 아니라 생각해요. 그건 누구나 조금만 연습하면 다 습득할 수 있는 것이거든요.

제가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스스로를 냉정히 평가하는 객관성과 궁금한 게 많은 성격 때문이라 생각해요. 저는 제가 게으르다고 판단하고 거기에 맞게 계획을 짜는 편이에요. 못 지킬 계획이나 약속 같은 걸 하고 나면 마음이 불편하거든요.

그리고 클래식 음악은 오래전에 누군가 남기고 간 작품을 연주하는 것이니 아무 생각 없이 따라 해도 어느 정도 결과물이 나오기도 하죠. 그런데 다행히도 제 성격은 그런 것에 안주하지 않고 작곡가와 작품에 대해서 끊임없이 연구하는 편이라 사람들이 제 연주를 특별하게 느끼는 것 같아요.”

손열음은 클래식 음악을 있는 그대로 연주하는 것은 ‘수동적’이라 표현했다. 클래식 음악도 얼마든지 창조적인 해석이 가능한데 악보 그대로만 연주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국내의 많은 피아니스트가 베토벤이면 베토벤, 쇼팽이면 쇼팽, 심지어 그 작곡가들의 어떤 곡만을 레퍼토리로 정해서 몇 년 씩 순회공연을 한다면, 손열음은 하루는 모차르트를, 다음 날은 쇼팽을 연주한다. 20세기 초반의 곡으로만 프로그램을 짜기도 하고, 재즈나 국악을 아우른 크로스오버 장르도 시도한다. 물론 손열음도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다.

“능동적인 작업을 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니 슬럼프가 오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나의 욕구를 채울 수 있을까’ 고민하는 중에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하나인 아리에 바르디 선생님을 추천받았죠.

2004년 독일 고슬러에서 선생님의 마스터 클래스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찾아갔어요. 가서 처음 지도를 받았는데 온몸에 전율을 느낄 만큼 충격이었어요. 이전까지 한 번도 구경해본적 없는 레슨이었죠. 선생님의 레슨은 곡의 당위성을 찾는 것부터 시작돼요. 피아노 레슨이 아니라 역사 수업 같죠. 연주자가 어떤 곡을 제대로 연주하려면 그 작가가 왜 그 곡을 썼는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거죠.

그렇게 작품 안에서 이유를 찾고 나면 연주자는 자신의 상황에 맞게 자의적으로 곡을 재해석할 수 있어요. 저를 키워주신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김대진 선생님에게 피아노를 치는 모든 기술을 사사받았다면, 바르디 선생님에게는 연주할 때 나만의 스토리를 구성하는 법을 배웠다고 생각해요.”

다른 유명 음악인들과 달리 오롯이 국내에서만 교육을 받았던 손열음은 2006년 오직 배움을 위해서 아리에 바르디 교수가 재직 중인 독일 하노버 국립음악대학교 최고 연주자 과정에 입학했다. 올해로 독일 생활 11년 차인 그녀의 생활은 처음과 달리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노버는 서울에 비하면 굉장히 작은 도시예요. 날씨가 우중충하고 생활 시설이 편리하지 않아서 처음엔 싫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오히려 그런 불편함이 좋았어요. 서울에서는 24시간 커피숍, 배달 서비스 등 안 되는 게 없잖아요? 그런데 하노버에선 안 되고 못 하는 게 워낙 많으니 왠지 사람들이 다 공평하게 사는 느낌이 들고 스스로 개척해 사는 재미가 있어요. 요즘은 해외 공연을 다니다 보니 오랫동안 집에 가지 못했네요.”

어머니가 사는 한국 땅도 아니고 독일의 집조차 가기 힘들고, 매일같이 비행기에 몸을 싣고 1년에 약 50회의 공연을 다니다 보면 향수병이 찾아올 수도 있을 텐데 그녀는 자못 씩씩하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사람이 너무 없는 도시를 지날 때면 ‘어디 귀신이라도 안 나타나나’ 생각해본 적은 있어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혼자 있는 걸 좋아해서 큰 문제는 없답니다.”

전 오히려 관객들이 오셔서 조용히 앉아 있다 가지 말고 대중 가수의 공연처럼 신나게 받아들이고 요란하게 즐기다 가셨으면 해요. 그래야 뮤지션들도 흥이 나서 더 멋진 무대를 꾸미지 않을까요?

 

[원문보기]
여성중앙 3월호 에디터 이충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