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열음과 페스티벌오케스트라의 ‘꿈같은 하모니’

▲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지난 3일 평창대관령음악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다.

▲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지난 3일 평창대관령음악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다.

해외서 활약 한국계 젊은 연주자들 대관령음악제 모여

화려한 제스처·강렬한 타건
관객들 ‘눈과 귀’ 사로잡아


뮤직텐트 밖에서 아이들이 재잘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벌레가 한두 마리 날아다녔다. 그러나 무대 위의 연주자들도, 객석의 청중도 음악에 함초롬 빠져 한여름 밤을 꿈처럼 보냈다.

지난 3일 평창대관령음악제 페스티벌오케스트라의 ‘집으로(Going Home), 두 번째 이야기’ 공연. 무대가 펼쳐진 알펜시아리조트 뮤직텐트는 축음기 나팔 모양을 본떠 만든 것으로, 지붕이 있는 실내 공간이면서도 개폐형 창문을 통해 야외 느낌을 살린 공연장이다. 페스티벌오케스트라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여기서 청중을 만났다. 해외 유명 악단에서 활약하는 한국계 20∼30대 연주자들을 모은 프로젝트 악단이다. 지난해 80여 명이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됐는데, 올해 또 결성했다. 박지윤 라디오프랑스 필하모니 악장을 비롯해 세계적 오케스트라의 수석, 부수석만 20여 명이다. 해외에서 지내다가 고국으로 온 그들의 연주에 ‘집으로’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적절했다.

손열음 예술감독은 이 공연에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을 편성했다. 러시아 출신 음악가 프로코피예프(1891∼1953)는 볼셰비키 혁명을 피해 1918년 서방으로 망명한 인물. 그의 음악에 대해 손 감독은 ‘귀소본능’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특히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에스카피즘(Escapism·현실도피)과 함께 할머니의 품 같은 곳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을 담고 있다고 해석했다.

손 감독은 이날 피아니스트로서 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함께 프로코피예프를 만났다. 흰색 러플이 돋보이는 검정 무대복을 입은 그는 환상적이면서도 비애가 스며 있는 곡조를 전하면서 특유의 자신감 있는 타건과 극적 제스처를 통해 관객의 청각과 시각을 만족시켰다. 악장과 악장 사이에 손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는 모습조차도 연출된 것처럼 드라마틱했다. 덕분에 선율이 반복되는 무궁동(無窮動) 악장조차도 입체감 있게 전해졌다.

79세 지휘자 드미트리 키타옌코는 수천 번 공연한 노장답게 젊은 연주자들을 노련하게 이끌었고, 손열음의 탁월한 감각이 충분히 빛나도록 뒷받침했다.

연주가 끝나자 뮤직텐트 1084석을 꽉 메운 관객은 수차례 커튼콜을 했다. 젊은 연주자들에 대한 경외와 격려가 함께 깃든 환호였다. 손열음은 모리츠 모슈코프스키 왈츠 곡을 앙코르로 연주한 후 청중에게 90도로 몸을 꺾어 인사했다.

페스티벌오케스트라는 이어서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을 들려줬다. 키타옌코는 자신의 고국을 대표하는 작곡가의 곡이 익숙한지라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이날 객석은 머리가 희끗한 노년 층부터 음악도로 보이는 청소년들까지 다양했으며,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 등 사회 각계 유명인의 얼굴도 보였다. 객석 중간에 있던 강은경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는 “휴가를 내서 공연을 보러 왔다”고 했다.

페스티벌오케스트라는 4일 강릉아트센터 사임당홀에서 ‘찾아가는 음악회’를 열었는데, 역시 청중의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는 게 음악제 측 전언이다. 지난달 31일 시작한 이 음악제는 오는 10일 페스티벌오케스트라가 베를리오즈 곡을 연주하며 끝난다.


평창 =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대관령에 온 '세 목동'… '동양인은 관악기 못 분다'는 편견 깼죠

김한&함경&조성현 
평창대관령음악제 막 올린 3人… 클라리넷·오보에·플루트 협연


암전에 가깝게 조도가 낮은 무대엔 푸른빛 알전구를 단 보면대 6대만 일렬로 놓였다. 오보이스트 함경(26), 클라리네티스트 김한(23), 플루티스트 조성현(29)은 백스테이지에서부터 악기를 불면서 천천히 걸어나왔다. 한 악기가 서정적인 선율을 잔잔히 연주하면 다른 두 악기는 한 음을 길게 끌었다. 러시아 작곡가 로디온 셰드린(87)이 어릴 적 개울가에서 들려오던 소리를 떠올리며 쓴 '세 목동'(1988)이다. 오카강 끄트머리에서 양을 치던 목동들이 저마다 노래를 흥얼거리는 풍경이 곡의 배경이다.

지난달 31일 밤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 내 콘서트홀에서 막 올린 제16회 평창대관령음악제(예술감독 손열음)는 개막 공연 '옛날 옛적에'의 첫 순서로 목관을 든, 세 명의 목동을 내보냈다. 플루트와 오보에, 클라리넷 등 목관만 한데 묶은 삼중주는 클래식 곡 중에서도 드물고, 셰드린은 현대음악 작곡가답게 악보에 마디를 나누지 않았다. 그럼에도 세 악기가 동시에 불어야 하는 음은 점선으로 이어놓아서 이 세 연주자는 악보도 같이 봐야 했다.

지난달 31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클라리네티스트 김한, 오보이스트 함경, 플루티스트 조성현(왼쪽부터)이 소낙비가 훑고 지나간 스키 슬로프에 섰다. 숨으로 악기를 조련하는 이들에게 맑은 공기, 선선한 바람은 “그야말로 천국”이라 했다. /장련성 기자

지난달 31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클라리네티스트 김한, 오보이스트 함경, 플루티스트 조성현(왼쪽부터)이 소낙비가 훑고 지나간 스키 슬로프에 섰다. 숨으로 악기를 조련하는 이들에게 맑은 공기, 선선한 바람은 “그야말로 천국”이라 했다. /장련성 기자

클래식 본고장인 유럽에서 '동양인은 관악기를 못 분다'는 편견을 조성현과 함경, 김한은 실력으로 깨뜨렸다. 조성현은 독일 쾰른의 귀르체니히 오케스트라에서 종신 플루트 수석. 함경과 김한은 지난해 9월 핀란드 방송교향악단의 오보에와 클라리넷 부수석이 됐다. 2012년부터 목관 앙상블 '파이츠 퀸텟'의 멤버로도 의기투합한 셋에게 '세 목동'은 "할 때마다 가슴을 울컥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곡"이다. 조성현은 "5년 전 뮌헨에서 만난 셰드린이 악보에 사인까지 해 선물로 줬다"고 했다. 악기마다 조성이 달라 얼핏 들으면 불협화음인데, 뭉치면 소박하면서도 내향적인 분위기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개막 당일 대관령엔 먹구름이 끼었다. 쏴아, 세찬 비가 멈추자 흙에선 풀 냄새가 났다. 산천초목과 들꽃으로 덮인 스키 슬로프, 풍성한 음악이 피로를 씻어줬다.

화전(火田)의 땅, 이효석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였던 평창은 해발 700m 대관령에 있다. 한여름에도 평균 기온이 21.9도에 머물러 음악을 하기에 딱 좋지만 관악 주자들에겐 다소 버거운 지대다. 높은 산에 오르면 숨이 헉헉 차듯 대관령에선 숨도 더 세게 불어야 하고, 서울에선 멀쩡했던 대나무 리드(reed)도 이상한 소리를 낸다. 오보에 특성상 칼과 사포로 리드를 직접 깎아 만들어야 하는 함경은 평창에 도착하자마자 리드 50개를 호텔 방에 펼쳐 놓고 일일이 끼워 불어봐야 했다.

이날 개막 공연은 바이올린의 스베틀린 루세브와 비올라의 가레스 루브, 첼로의 율리안 슈테켈, 더블 베이스의 미치노리 분야, 피아노의 김선욱이 함께한 슈베르트 피아노 오중주 '송어'가 장식했다. 베토벤이 20년 동안 나눠 쓴 첼로 소나타 1~5번을 하룻밤에 들을 수 있는 '그래야만 하는가?',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집으로, 두 번째 이야기' 등 음악제는 오는 10일까지 계속된다.

=조선일보 김경은 기자

손열음 BBC 프롬스 데뷔…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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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피아니스트 손열음(33·사진)씨가 세계적인 음악축제 영국 BBC 프롬스 무대에 데뷔한다.

손열음씨는 오는 24일 오전 3시30분(한국시간) 영국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BBC 필하모닉과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제15번 B플랫 장조 K.450을 협연한다. 오는 9월부터 BBC 필하모닉의 새 상임 지휘자로 취임하는 오메르 메이어 베어(38)의 데뷔 무대에서 첫 곡을 연주한다.

BBC 프롬스는 매년 여름 약 8주간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클래식 축제다. 1895년 처음 시작한 이후로 자유분방한 분위기, 다양한 이벤트와 실험적인 공연형식으로 클래식 애호가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 이자벨 파우스트,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 유자 왕,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 사이먼 래틀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와 지휘자들이 참여했다. 현 평창페스티벌오케스트라 오보에 수석 단원인 함경씨도 올해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객원 수석으로 BBC 프롬스에 참여할 예정이다.

손열음씨는 영국 BBC 프롬스에서 짧은 일정을 소화한 뒤 곧바로 평창대관령음악제 개막 준비에 매진할 계획이다. 손열음씨는 지난해 3월 평창대관령음악제 3대 예술감독에 취임했다. 올해 평창대관령음악제는 7월31일~8월10일 강원도 평창군 알펜시아리조트 내 콘서트홀과 뮤직텐트를 비롯해 강원도 일대에서 열린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